패튼의 '돌멩이 수프' 이야기

어떤 농장에 남루한 옷차림의 나그네가 찾아와서 농장 주인에게 자기는 돌멩이로 수프를 끓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농장 주인은 어디 한번 자기 앞에서 끓여보라고 말한다. 나그네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서 이걸 씻고 끓일 물과 냄비와 버너를 달라고 한다. 농장주인은 나그네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져다준다. 돌멩이를 물과 함께 냄비에 넣고 끓이던 나그네는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농장주인에게 돌멩이 수프의 맛을 좀 더 내기 위해서 계란을 하나 가져오라고 한다. 농장 주인은 계란을 가져다준다. 나그네의 부탁은 이어진다. 간을 내기 위해 소금 약간, 후추 조금, 올리브유 한 방울… 이윽고 나그네는 냄비에서 돌멩이를 건져낸 후 잘 만들어진 계란 수프를 배불리 먹고 총총히 사라진다.

조지 C. 스코트 주연의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으로 익히 알려진,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맹장 조지 S. 패튼 장군이 즐겨 써먹던 유머이다. 패튼 장군은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작전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그런 명령 불복종의 이유를 그는 '정찰 중 우연히 진격' '도주하는 적 추격 중 점령' 등의 애매한 표현으로 둘러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위의 유머를 즐겨 인용했다. 사실상 자신이 연합군 최고 지휘부를 상대로 사기(?) 친 것을 인정한 셈이다. (패튼 장군의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역량이나 그가 2차 대전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내용은 주제와 무관하여 논외로 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인문학적 격언인 이 말을 과학으로 번역하면 고립된 계에서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열역학 1.2 법칙이 된다. 그래서 무기물인 돌멩이로 유기혼합물인 수프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농장 주인은 그런 뻔한 사기에 넘어가서 사기꾼 나그네가 달라는 모든 것을 바치고야 만다. 그것은 삽질만 죽으라 하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여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경부운하 - 이명박 표 돌멩이 수프

사시미 칼질하듯 삽질 하나로 한반도 남쪽에 대각선으로 물길을 그어버리면 대한민국은 만사형통이라는 것이 '찍힌 놈' 이명박의 공약 제1호였다. 하지만 원숭이 수준 아이큐만 있어도 '삽질로 운하를 파서 경제를 살리겠다.'라는 말과 '돌멩이로 수프를 끓일 수 있다.'라는 말은 똑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 표 돌멩이 수프의 제작 과정 역시 '안 보아도 비디오'로 쉽게 감이 잡힌다.

경부운하가 경제성이 없음이 판명되니까 삽질에 참여하겠다는 민간회사들은 운하주변 지역 개발권을 사업시행의 전제조건으로 내놓기 시작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운하의 고유기능에 대한 평가는 뒷전이고 관광명소, 수질개선 등 운하와는 별로 상관없는 내용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거야말로 돌멩이 수프의 맛을 내기 위해 계란을 달라는 식이다. 그래서 계란을 주기 시작하면? 완전히 사기꾼에게 엮이는 거다.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다음부터는 사기꾼이 해달라는 데로 다 해줄 수밖에 없으니까.

정말로 돌멩이 수프를 만들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다면 수프 안에 든 돌멩이를 먹을 수 있도록 조리 해내야 한다. 돌멩이 들어간 계란 수프 만들어서 돌멩이만 건져내고 처먹겠다는 얄팍한 잔대가리 굴리는 짓거리는 안 통한다. 운하는 물류비용 절감과 효율 증대를 고유목적으로 한다. 한반도에 그러한 운하가 꼭 필요하다면 운하의 고유목적 자체로 타당성을 가져야 하고 그것 하나로 대국민 설득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머지는 부가적 이득이다. 이것이 주연이 될 수는 없는 거다.

단지 건설토목업계에 먹고살 일감을 주기 위해서, 또 투기업자들 현찰 불리는 아이템으로 관광명소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러브호텔 즐비한 팔당의 한강변처럼 운하 길 따라서 사람들 교미장소 만들어 줄 계산이라면, 결국 돌멩이 수프에서 마지막에 갖다버리는 돌멩이처럼 운하의 고유기능이 사람들을 눈속임하는 낚시감에 불과하다면 경부운하는 과감히 용도폐기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찍힌 놈' 이명박은 취임 전부터 교활한 트릭을 전개하고 있다. 돌멩이 수프를 끓일 테니까 계란을 달라고 한다. 계란을 주지 않으면 계란을 주지 않아서 수프를 끓이지 못했다고 책임을 전가할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단지 계란 하나면 상관이 없겠지만 계란을 주기 시작하면 그는 보편적 원칙과 상식이라는 가치들을 대한민국에서 파렴치하게 강탈해 갈 것이다. 경제회생이라는 돌멩이 수프의 재료로 필요하다는 미명 하에.

이것은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무조건 제압해야 하는 부조리한 권력의 거대 사기극이다. 제압하지 못하면 인간세상이 한없이 비참해 질 수밖에 없는. 천만번을 양보하여 설령 우리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여 제압에 실패해도, 현명한 일단의 사람들은 막기 위해 최선과 신명을 다 바쳤다는 후세에 대한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어떻게 막아야 할까?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차라리 과거의 '민추협'처럼 경부운하저지를 고리로 하여 모든 주체들을 아우르는 투쟁조직을 만들 수는 없을까? 나는 87년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의식이 퇴행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어제의 '다물군'들은 아직도 대부분 죽지 않고 살아있을 것이다. 다만, 올라가는 '깃발'이 '다물군'들의 가슴에 메아리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경부 운하 저지'가 '호헌철폐, 독재타도!'만큼의 울림이 될 수 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역시 시대를 잘 읽지 못하는 나만의 몽상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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